[김순정목사 설교] 아이를 낫게 하신 예수님

눅 9: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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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20-10-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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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게 되었습니다. 광채가 났습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나눈 대화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31).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루고자 하신 일은 바로 구속사역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죽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세 사람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33).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하나님께서는 직접 하늘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35)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다윗과 같이 강력한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궁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나셨습니다. 백마를 타신 것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왕위에 올라 영원히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처절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와 같아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53:2).

 

2. 제자들의 실패(37-40)

 

예수님께서 다음날 산에서 내려오십니다(37). 그러자 큰 무리가 맞이했습니다. 이 무리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쳐주시고,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정치적 메시야로 오신 것이라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과 같이 강력한 왕으로 등극하시면 로마로부터 해방을 가져오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38-40). 예수님께 한 사람이 나와 간청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기 아들을 돌보아 달라는 것입니다. 돌보다(에피블레포)는 주목하다, 향하다, 눈을 돌리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 아들을 사랑으로 돌아봐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그에게 이 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외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귀신에게 사로잡혔습니다. 39절에 나오는 잡아(람바네이)는 현재형으로 그가 계속해서 취하고 있다, 그가 계속해서 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갑자기 부르짖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며 몹시 상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악령이 아이에게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지 못했습니다(40). 그들이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시도는 해보았으나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귀신이 무서워 떠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3. 아이를 낫게 하신 예수님(41-43)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41). 여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누구를 말하는가? 문맥상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들과 함께 오래 계시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믿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셨습니다. 꾸짖다(에피티마오)는 책망하다, 훈계하다, 질책하다는 의미입니다.

 

낫게 하다(이아사토)는 부정과거입니다. 온전하게 나았다, 온전하게 고쳤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아이를 완전하게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손을 대거나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온전히 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도로 주셨습니다(42).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43). 하나님의 위엄(메갈레이오테스)은 영광, 장엄함, 위대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위엄입니다. 이것은 단지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셨는데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론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하고,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우리의 능력,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그분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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