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성경의 본질과 교육적 특성-딤후 3:15-17, 마 28:19-20, 벧후 1:19-21을 중심으로-(2)

김상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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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20-10-10 [16:40]

  

이 논문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을 교수하는 김상훈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성경의 본질과 특성, 목적, 교육적 효과에 대하여 자세히 밝히고 있다.

 

 

▲ 김상훈 박사     ©리폼드뉴스

개역개정의 베드로후서 1:20의 번역,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사로운 해석’, 즉 개인 해석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뜻일까?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를 직역하면, “성경의 모든 예언은 자신의 해석(풀이)으로 된 것이 아니다이다. 여기서 초점은 해석’(에피뤼시스, ἐπλυσις)이라는 단어이다. ‘해석에 대해를 뜻하는 전치사 에피(ἐπί)푸는 것을 가리키는 뤼시스(λσις, λω[‘풀다’]의 명사형)의 합성어이다. 그러니까 에 대해 풀어내는 것’, 즉 해석(풀이)을 뜻한다.

 

그런데 ‘A(성경의 모든 예언)B(스스로의 해석)로 될 것이 아니다(해서는 안 된다)’의 뜻일까, 아니면 ‘A(성경의 모든 예언)B(개인이 풀이한 것)로 된 것이 아니다일까? 전자로 본다면, 자의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되어, 개역성경의 번역을 뒷받침해준다. RSV(“no a matter of one’s own interpretation”, ‘개인적인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도 비슷한 경우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성 경의 모든 예언이 (선지자) 개인의 풀이(어떤 생각이나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우기네타이(ογνεται)된 것이 아니다로 보어가 필요하다. 따라서 ESV(“no comes from someone’s own interpretation”, ‘누군가의 개인적인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NIV(“no came about by the prophet’s own interpretation of things”, ‘어떤 것에 대한 선지자 자신의 풀이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다’)의 번역이 적절하다.

 

말씀을 아무나 함부로 해석하면 안 된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사사로운) 해석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데에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사람이 풀이해서 놓은(내놓은) 말씀이 아니다에 중점이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란 얘기이다. (본문을 스스로 해석하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기억하자.)

 

이런 내용은 다음 구절인 21절에서 사실상 반복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다20절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해서 강조한 것이다. 역시 사람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한다. 이를 좀 더 상술하여,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개역개정)고 하였다. 이 부분은 성령에 의해 움직여진(페로메노이, φερμενοι) 사람들하나님으로부터(아포 쎄우, ἀπθεοῦ) 말한 것이라는 사실이 부각된다. 성령에 의해 움직여졌다는 것은 그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의 영감을 받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성령에 의해 움직여진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받아) 말한 것이 성경이라는 말씀이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영감된 것이라는 바울의 진언(딤후3:16)이 베드로의 글에서도 확언된 것이다따라서 말씀(성령의 말씀)을 붙잡고 묵상할 때 하나님에 의한 진리의 빛이 마음에 비취게 된다(벧후 1:19; 14:26; 16:13).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라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고 이를 새롭게 하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은 개혁주의 영감론을 말하면서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축자 영감’(verbal inspiration)이다. 축자 영감은 본문의 단어, 어구 하나, 하나가 다 영감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원본(original text)에 해당된다. 둘째는 유기영감’(organic inspiration)이다. 하나님과 인간 저자 간의 완벽한 조화를 가지고 있다는 견해이다. 성경을 분류해서 어떤 부분은 인간 저자의 것으로 돌리고, 다른 부분은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는 식은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만전(완전) 영감’(plenary inspiration)이다. 모든 성경, 즉 성경의 모든 범위가 영감된 것을 강조한다. 성경 내에 영감되지 않는 책이 없다는 견해이다.

 

세 가지 영감론은 사실상 각기 분리되지 않는다. ‘모든 성경이 영감되었다(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할 때, 성경의 각 권 중 영감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만전 영감과 각 권이 영감되는 과정(또한 방법)에서 하나님과 인간 저자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유기 영감’, 그리고 각 권으로 들어가면, 본문의 어구들이 모두 영감되었다는 축자 영감이 함께 반영되기 때문이다.

 

특히, 축자 영감은 말씀의 모든 어구가 영감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런 절대적인 경외는 말씀 하나, 하나에 주의하게 하고 이를 통해 말씀의 풍요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각 어구의 묵상과 귀 기울여 듣기(연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경외에서 나온다.

 

세 영감론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책으로 믿는 개혁신학의 신학적, 사상적 기반이 된다. 하나님의 책인 성경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은 그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영감된 말씀이라는 개혁신학의 고백이 성경교육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축자 영감을 고백하는 교회가 성경(어구) 하나하나를 바르게 이해하려 하며 깊이 깨닫고 묵상하려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 그렇게 잘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영감된 성경은 처음 기록된 때의 영감성(靈感性)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현재 영감된 말씀의 역할과 목적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목적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또한 그때 영감된 성경을 지금의 영감된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이다.

 

2. 성경의 목적

 

영감된 거룩한 책, 성경은 따로 고고하게 보존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목적이 있다. 그것이 성경의 존재 이유이다. 책은 사람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쓰인다. 반면에 성경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성경은 사람을 바꾼다. 하나님이 사람을 바꾸는 데 성경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형성하는’(formative)이란 용어를 쓰는데, ‘정보를 주는’(informative) 데에서 사람을 바꾸는’(transformational) 데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16의 앞(15)과 뒤(17)에서 성경의 목적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한다’(3:15). 15절 뒷부분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거룩한 글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너를 능히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이다. 성경이 구원의 지혜를 얻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목적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성경을 배우고 알게 되면 깨달음(지혜)이 생기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어, 결국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성경은 구원의 가이드북으로 구원으로 이끄는 안내서이다. 성경은 이렇게 사람을 바꾼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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