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John Calvin), 사순절 행사에 대하여

미신, 공로사상, 위선적인 금식, 사순절 행사 등은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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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13-03-25 [18:24]

 

 

▲ 칼빈 (1509-1564)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활주일이 다가오면서 교회는 고난주간을 지키고 있다. 서방교회는 부활절 전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금식이나 단식으로 절제된 생활을 하며 보냈다.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금식하신 것을 본받아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금식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동방교회는 부활절 8주 전부터 시작하고 토요일과 주일을 모두 금식일에서 제외한다. 이러한 사순절 행사에 대해 개신교회는 수용하지 않는다. 특히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는 84차 총회에서 사순절을 지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교회들은 사순절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여기서 칼빈이 사순절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미신, 공로사상, 위선적인 금식, 사순절 행사 등은 위험한 것이다(19-20)

러나 과거에 미신이 잠입해 교회에 큰 해독을 끼친 것과 같은 일이 다시는 없도록 우리는 항상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금식을 전혀 하지 않는 편이 열심히 지키는 금식이 거짓되며 유독한 생각으로 부패해지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목사들이 극도로 충실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이런 유해한 사상에 몇 번이고 빠지게 될 것이다.

첫째로 목사들은 요엘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라 한 것(욜 2:13)을 항상 권고해야 한다. 즉 마음 속의 감화와 자신의 죄에 대해 진정한 혐오와 겸손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진정한 슬픔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금식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목사들은 신자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이런 일들에 대해 부차적 보조 수단으로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면 금식은 아무런 유익도 없다. 사람에게 순진한 마음이 없고 외형과 표징만으로 가장하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마음 속에는 불경하고 불결한 생각이 있으면서도 금식을 했으니 하나님을 만족하게 했다고 생각한 유대 사람들의 그 위선을 통렬하게 공격했다. “이것이 주께서 택하신 금식이냐”라고 했다(사 58:5-6). 그러므로 위선적 금식은 무익하고 불필요한 것일뿐만 아니라 가장 가증한 짓이다.

이와 유사하고 철저하게 피해야 할 폐해는 금식을 공로가 있는 행위나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경배라고 보는 생각이다. 금식 자체는 무해 무익하며 그 원래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면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행위들과 다른 고려를 할 것 없이 그 자체만으로 필요한 행위들과 금식을 혼동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미신이다. 과거 마니교도들이 이런 망상을 했다. 그들을 반박하면서 어거스틴은 금식은 오직 내가 열거한 목적들에 의해서만 판단해야 하며 이런 목적과 관련될 때에만 하나님께 가납된다고 분명하게 가르쳤다.

셋째 오류는 그다지 불경건하지 않지만 역시 위험한 오류이다.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인 듯이 금식을 엄격하고 엄밀하게 지키라고 요구하며 세상 사람들이 금식을 실행하면 어떤 고상한 일을 한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금식을 과도히 찬양하는 것이 셋째 오류이다.

이 점에서 나는 미신의 씨를 뿌리며 또한 그 후에 일어난 압제의 원인을 제공한 고대 저술가들의 죄를 전적으로 용서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들의 글에는 금식에 대한 건전하고 현명한 발언들이 간혹 있지만 그 후에 금식을 가장 중요한 덕 중의 하나로 만드는 지나친 찬사에 자주 부딪히게 된다. 


때는 벌써 사순절을 미신적으로 지키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특별한 봉사를 한다고 생각했고 목자들은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모방하는 것이라고 해서 권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금식하신 것은 다른 이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복음 선포를 시작하심으로 복음은 사람의 사랑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교훈이란 것을 증명하시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마 4:2).

그런데 (이미 명백한 논거에 의해 여러 번 논박된) 이런 순전한 망상이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금식하지 않으셨다. 매년 금식하라는 법을 정하실 생각이 있었다면 자주 금식하셨을 것이나 한번 밖에 하신 일이 없으며 그것은 복음을 선포하려고 준비하신 때였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본받게 하시기를 원하셨다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금식하셨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도 않으셨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자기를 본받게 하려고 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기에 대해 경탄할 만한 예를 보이려고 하셨다. 끝으로 그리스도께서 금식하신 이유는 모세와 여호와의 손에서 율법을 받았을 때 금식한 이유와(출 24:18; 34:28) 다르지 않았다.

모세에게서 기적이 나타난 것은 율법의 권위를 세우려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의 경우에도 복음이 율법보다 낮은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 기적을 빠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세 이후에 그를 본받는다는 구실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그런 모양의 금식을 제정하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예언자들과 조상들은 모든 경건한 행사에 대해서 극진한 열의가 있었으나 그들 중에서 모세의 금식을 본받은 사람은 없었다. 엘리야가 40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행했다는 것은(왕상 19:8)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버린 율법을 회복하는 사명을 그가 받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됐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행동이라고 해서 금식을 정당화한 것은 미신이 가득한 그릇된 열성이었다.

그러나 금식하는 방법도 놀라울 정도로 각양각색이었다. 이 사실은 소크라테스 전기 제9권에서 따 온 카시오도루스의 기록에 남아 있다. 로마에서는 3주간 금식했는데 일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금식이 계속되었다. 일리리아와 그리스에서는 6주간, 다른 곳은 7주간이었으나 종종 중단되기도 했다. 택하는 음식도 달랐다.

어떤 이들은 빵과 물만 먹었고, 어떤 이들은 거기에 야채를 첨가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생선과 닭고기를 끊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음식을 전혀 구별하지 않았다. 어거스틴도 야누아리우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이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후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일반인들의 그릇된 열성에 주교들의 무능과 훈련부족 그리고 그들의 지배욕과 전제적인 엄격주의가 겹쳤다. 무서운 사슬로 양심을 결박하는 악법이 제정되었다. 육식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처럼 금지되었다. 모독적인 생각이 쌓이고 쌓여 결국 오류의 극치에 이르렀다.

그리고 단 하나의 비행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철저하게 어리석은 금욕의 가면을 쓰고 하나님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가장 훌륭한 진미를 먹으면서 금식을 찬양했다. 다음에는 어떤 진미를 먹어도 만족해하지 않았다. 금식 기간같이 음식이 풍부하고 종류가 많고 맛이 단 때가 없다. 그들은 이런 음식과 사치한 장식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를 드린다고 생각하다.

나는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자들이 금식 기간에 다른 때보다도 더욱 배불리 또 추악하게 먹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 예컨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경배라고 하는 것은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에 모든 진미를 풍성하게 먹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으로도 속죄할 수 없는 최악의 불경경이라고 하는 것은 돼지기름이나 썩은 고기를 검은 방과 함께 조금이라도 먹는 것이다. 제롬은 그의 시대에 이런 어리석은 짓으로 하나님을 희롱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기름을 먹지 않기 위해 각지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구해왔다.

심지어 자연법칙을 어기고 물을 마시지 않는 대신에 달고 비싼 음료를 만들게 하여 잔으로 마시지 않고 조개껍데기로 마셨다고 했다. 그때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 행해지던 악한 것을 지금은 모든 부자들이 행하며 그들이 금식하는 목적은 진미를 더욱 호화롭게 먹으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일에 대해서 나는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 마디만 말하겠다. 로마 가톨릭주의는 금식 문제에서나 권징의 다른 부분 어디에서도 바른 것, 성실한 것, 질서가 잘 잡힌 것은 하나도 없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칭찬할 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듯이 자랑할 이유가 전혀 없다. 
 
칼빈 저, 기독교강요 IV권 12장 19-21절 중에서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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