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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트림프의 <구속사적 설교> 1

1930년대에 화란 개혁교회에서 “구속사적 설교”에 관한 중요한 논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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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19-05-24

 

C. 트림프(C. Trimp)는 1926년 출생하여 화란 캄펜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화란 캄펜신학교에서 실천신학 교수로 활동했다. 이 글은 그의 저서인 「설교학 강의」에 수록된 구속사적 설교라는 논문이다.

 

1930년대에 화란 개혁교회에서 “구속사적 설교”에 관한 중요한 논쟁이 일어났다. 그때 중요하고 흥미있는 문제들이 거론되었다. 그것은 설교학, 해석학과 주석학의 분야에 관한 문제였다. 그 밖에 교의학과 철학도 그 논쟁에 영향을 미쳤다.

 

이 논쟁에 대해서 잘 정리된 개요를 원하는 사람은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박사 논문인 “Sola Scriptura”를 구해서 볼 수 있겠다. 이 논쟁에는 스킬더(K. Schilder)와 홀베르다(B. Holwerda)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나는 이 두 사람만을 들어 보겠다.

 

1. 논쟁의 출발

 

1920년대 그 당시 목사였던 스킬더는 그의 주간지 “De Reformatie”에 구속사적 설교에 대한 자신의 글을 여러 차례 실었다. 특히 성탄, 부활과 같은 구속의 사건과 그것들에 관한 설교와 관련된 글을 썼다. 그는 고난의 복음에 대하여 「고난의 그리스도」 3부작을 펴냈다. 이 책은 설교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당시 많은 젊은이들의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나 구속사적 설교라는 주제는 스킬더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도 아니다. 19세기 말 바빙크는 “계시역사”라는 이름으로 신학계에 소개된 그 새로운 과목의 중요성을 이미 말했다. 계시와 구속역사에 대한 강조는 성경을 단지 전통적인 교리를 증명하기 위한 진리로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반항이었다. 이 방법에 의하면 성경은 시간과 관계없는 사실을 수집해 놓은 것이었다.

 

화란의 소위 윤리주의 신학은 일종의 기독교적인 성격에 관한 모형을 근거로 해서 그 당시 정통 교리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는 반면 부흥하는 개혁주의 신학은 지성적으로 성경을 취급하는 것에 대해 계시역사를 강조함으로 저지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개혁주의를 이끌어가는 확신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것은 그분이 하시는 사역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또 사역하시기 그 이전에 도중에 그리고 이후에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이 핵심이 되는 확신은 성경을 참고하는데 대해 두 가지 다른 방법을 반대한다.

 

즉 성경을 시간과 관계없는 본문을 수집한 것으로 보는 것, 그리고 성경을 인간적인 신앙의 경험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는 것이 그것이다.

 

카이퍼(A. Kuyper)는 그 당시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계시의 역사라는 신학과목에 대해 말하면서 「신학 백과사전」에서 그렇게 했다.

 

이와 관련해 계시역사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다룬 잘 쓰여진 반 안델(J. Van Andel)의 「성경역사 연구를 위한 지침서」를 지적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이 왜 이 세기 초 30년대에만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질문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내 생각에는 적어도 5가지 동기를 제시할 수 있다.

 

1)우리가 앞에서 간략하게 지적했던 개혁주의 전통

 

2)창세기 2-3장에 나오는 성경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한 화란 개혁교회 내에서는 투쟁

 

3)계시-역사라는 말을 내적인 모순으로 생각하는 바르트(K. Barth)에 반대하는 논쟁, 즉 바르트 생각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 모든 인간적 역사는 멈추고 인간적 역사가 일어나는 차원에는 계시가 자신을 감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개혁파 교회가 설교 혁신의 필요성을 느꼈다. 설교는 주관주의 혹 객관주의 또는 그것들을 혼합하는 것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종의 편협한 도적주의와 관련된 주관주의적 경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브라함 카이퍼 신학의 영향을 받은 일련의 객관주의적 교리설교가 있었다. 이 잘못된 두 형태에 비해서 성경의 현대적 중요성에 스킬더와 같은 사람들의 풍부한 통찰이 더 많이 나타났다.

 

5)특히 우리는 30년대와 40년대에 새로운 주석에 대하여 홀베르다가 민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0년대에 독일에서 구약성경에 주어진 관심은 놀라운 현상이었다. 그리고 30년대에 나치의 출현과 반유대주의가 나타났다. 이에 대한 반응과 바르트주의의 영향 하에서 구약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났다. 우리는 위의 결과로 발터 아이히로트(W. Eichrodt)와 폰 라드(G. von Rad)의 책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의 결과에서 설교에 대해 열매를 맺으려고 애쓴 사람은 바로 홀베르다였다.(계속)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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