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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환, 칼빈과 언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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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19-11-23

▲     ©리폼드뉴스

 

(김인환 박사는 총신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구약학을 가르쳐온 분이다. 이 글은 김인환 박사가 총신대논총에 기고한 글로 칼빈주의 신학과 언약신학의 관계성을 제시하고 있다.)

 

III. 칼빈과 행위언약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 설교에 나타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칼빈은 분명히 은혜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위언약이라는 언약신학의 특징적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행위언약의 제반 요소와 본질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칼빈은 실질적으로 적어도 언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타락 전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나님의 관계가 언약적임을 설명했다.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이들은 [생명나무와 무지개] 아담과 노아는 성례라고 간주하였다. 나무가 그 자체에게 줄 수 없는 불멸의 생명을 그들에게 제공해 준다거나 무지개(반대쪽에 있는 구름 위에 태양의 빛이 반사된 것에 지나지 않는)가 물을 멈추게 하는 효력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의 언약들의 증거들과 인봉들이 되게 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것들에게 새겨져 있는 표식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칼빈이 이렇게 언약을 복수로 지칭함으로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와 가진 관계가 모두 언약적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관계가 언약적이기에 무지개를 그 관계의 표징으로 삼았음과 같이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관계가 언약적이기에 생명나무를 그 관계의 표징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칼빈은 타락 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인식은 비록 칼빈이 이처럼 언약이라는 술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지만 언약적 관계를 반영하는 다른 여러 성격과 요소를 가지고 이를 설명하고 있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인간은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왕국에서 추방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아담이 타락전 하나님의 왕국에 있었다는 것이며 아담이 타락전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 때도 도덕적으로 완전한 상태에 있었다고 이해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이 법에 순종하게 될 때 인간은 드디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상의 복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두 그루의 나무 즉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것과 더불어 설명한다. 이 두 그루의 나무를 성례적 나무로 일종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했다.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세례는 외적인 의식이나 성례이다. 마찬가지로 에덴 동산에 두신 두 그루의 나무도 외적인 상징으로 이러한 성례라는 것이다.

 

칼빈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고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였으며 그리스도는 언약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칼빈이 생명나무를 언약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보았다면 결국 이 생명나무는 언약의 상징이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칼빈은 성례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처럼 타락 전 에덴 동산에 하나님이 성례를 세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과 에덴 동산의 아담 사이에 언약의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성례를 세운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은 하나님이 이런 외적 표적을 사용해 성례를 세움으로 모든 것의 실재를 충분히 보거나 깨달을 수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깨닫게 하고 그 은혜에 집중하고 사로잡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완전성에 도달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칼빈은 타락 전 에덴 동산에 아담을 위해 세우신 성례들도 역시 동일한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주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그에게로 오를 수 없음을 인식하였기에 아담으로 그의 생명이 누구로부터 오게 되었는가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고 하나님과만 교제하면서 그의 삶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복되게 살고 또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유일한 법칙일고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성문화된 법이란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 언약의 법으로 주신 십계명을 가리킨다. 칼빈은 이렇게 창조 시에 아담에게 주신 법과 십계명의 상호 연관성, 그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칼빈은 이처럼 타락 전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가 언약적이었음을-비록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나타내고 있다. 칼빈의 이런 신학 사상은 소위 칼빈 이후에 등장하는 언약신학자들의 내용과 부합함을 고려할 때 후기 언약신학자들이 그들의 신학을 칼빈과 무관하게 발전시켰다기 보다는 칼빈의 이런 전체적 사상의 테두리 속에서 칼빈이 기초를 놓은 신학을 언약신학의 체계 속에서 행위언약이나 은혜언약 등의 명칭 등을 개발해 보다 명료하게 발전시키고 구체화하면서 묘사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면은 칼빈의 종말론적 창조관을 통해서도 분명해진다.

 

IV. 결론

 

지금까지 칼빈주의 신학과 언약신학이 왜 동일시되어야 하는가를 논하기 위해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들을 분석하면서 그의 저술 속에 나타난 특별히 행위언약의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분석의 결과는 칼빈의 사상은 오늘날 언약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펴본 칼빈의 저술 속에 나타난 칼빈의 언약은 구원의 한 면을 설명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그의 신학의 한 주제가 아니라 창조, 타락,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역사의 모든 진행과정과 그에게서 이루어진 구원의 전체를 체계화시켜주는 한 중심 사상이며 그의 신학의 핵심으로 이해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칼빈이 창조언약 혹 행위언약, 구속 언약 혹 은혜언약 등의 언약신학의 핵심적 체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나 그 모든 요소들을 충분히 깨닫고 그것들을 사용해 그의 신학 체계를 제시하고 있는 한 우리들은 칼빈의 신학을 언약신학이라고 결론짓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한국개신교가 칼빈주의 신학 전통을 유지해 오면서도 이런 칼빈주의 신학의 핵심이며 그 체계인 언약신학을 정립하여 실생활에 적용 실천하지 못하므로 사변화되었거나 경직되었으며 일종의 구호로 전락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무기로 성도들의 삶을 이원화시켜 성도의 삶을 하나님이 구워한 이 세상에서의 책임을 무관심하게 만드는 반면, 극단적인 저 세상 지상주의로 정착시키는 도구가 되어 왔다.

 

그래서 칼빈주의자로 지칭하는 신학자, 목회자, 칼빈주의를 연구하고 그 신학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칼빈주의 연구소와 칼빈주의 신학교와 그 교회들 모두가 오히려 가장 비칼빈주의적인 사고와 생활을 서슴지 않는 결과를 빚었다. 우리는 칼빈의 신학체계에서 출발한 언약신학을 정착시켜 이러한 비칼빈주의적 모습을 크게 반성하고 올바른 칼빈주의의 역동적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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