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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목사 설교] 요나의 하나님

욘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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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20-01-25

▲     ©리폼드뉴스

 

요나는 BC 793-753년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셔서 당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보내십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아주 강성기를 맞았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나라를 강력하게 이끌었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강력한 적수인 아람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고 앗수르도 시흥국가 아라랏에게 도전을 받는 상황이 되자 북이스라엘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 기회를 틈타서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는 아람의 수도를 정복해 버립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과 앗수르는 언제 전쟁을 다시 치를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때에 요나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1. 요나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1-3)

 

1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자기의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주신 말씀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것이었습니다(2).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악독(라)은 사악한 일, 나쁜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악한 일들이 하나님께 상달된 것입니다. 여기 상달되었다(아레타)는 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 파악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니느웨로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욥바로 내려갑니다. 니느웨와 다시스는 정반대 방향입니다. 욥바라는 항구에서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려고 배에 올랐습니다(3).

 

선지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전하고 싶으면 전하고 전하기 싫으면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 즉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앗수르에 회개선포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 전달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2. 큰 바람을 내리신 하나님(4-10)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십니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습니다(4). 사공들은 두려워하여 각각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배의 짐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5). 그런데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이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배 밑층에 내려가 잠이 들어버리면 하나님께서 그를 찾지 못하는가?

 

선장이 요나에게 가서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6). 여기 선장은 이스라엘 사람이라기 보다는 이방인이라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그가 요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지자라는 사람이 이방인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북이스라엘의 신앙상태였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제비를 뽑기로 했습니다. 이 재앙이 누구로부터인가? 그 해답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나가 뽑혔습니다(7). 배에 있던 사람들은 요나에게 직업과 출신을 물었습니다.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8)

 

요나는 당당하게도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대답합니다(9).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금 도망을 가고 있는가? 그런데 요나는 이 말을 하면서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 재앙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배에 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10). 지금 그 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타 있었고 그들이 믿던 신들도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던 신들은 이 풍랑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11-17)

 

바다가 점점 더 거세졌습니다. 무리가 요나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11) 그들은 이 바다 가운데서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에게 사는 길을 물어봅니다. 요나는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12). 이 재앙이 요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희생도, 의로운 행동도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허사였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13). 결국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14) 그 배에 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이 이 위기로부터 건져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위기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그러자 바다가 곧 잔잔해집니다. 원문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마자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몇 가지를 보여주십니다. 첫째,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라는 점입니다(창 1:1). 둘째는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도망하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셋째, 이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배에 탄 사람들이 다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했습니다(16). 즉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배에 탄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그가 바다에 던져지자 곧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는 물에 빠져 죽지 않고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있게 됩니다(13).

 

결론

 

요나의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니느웨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사는 길을 주셨습니다.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서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은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살려주셨습니다(골 1:20).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한 주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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