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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 신본주의냐 인본주의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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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20-02-22

  

 

(이 글은 故 박형룡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본주의이다. 교회는 인간 중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독교의 타락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다시금 신본주의로 돌아가야 하고, 성경의 기독교로 돌아가야 한다. 박형룡 박사의 이 논문은 우리에게 다시금 신본주의 사상을 깨우쳐 준다.)

 

(2) 종교가로서 대자연을 통하여 당연히 느껴질 바의 경건한 감상은 그 무엇인가?

 

청천일장지에 일월성신이 찬란한 그 광경을 우러러 보는 인본주의자는 어거스트 꽁트와 함께 하늘은 천문학자의 영광을 선언한다고 말할 것이다. 즉 그들은 천문학자가 천체 운행의 법칙과 질서를 일일이 설명하여 놓았으니 그 얼마나 훌륭하냐고 한다. 그러나 그런 법칙과 질서를 가진 모든 천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 또한 얼마나 더 훌륭하신가? 고로 성경은 신본주의로서 선언하기를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궁창은 그 수공을 표시한다고 한다(시 19-).

 

인본주의는 과학만능을 선언하여 과학의 자연계에 대한 연구와 정복의 효능을 극구 찬양하다가 자연법칙과 질서는 우주를 충분히 설명한다고 하여 하나님대 우주, 하나님대 사람 사이의 공작을 혹은 온전히 부인하고 혹은 반을 부인하기에 이른다. 종교가가 유물론을 따라 무신사상에 갈수도 없지 않아 있다. 나는 얼마 전에 어떤 신학잡지에 「무신적 신학」이라는 논제가 있음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그렇게 무신론에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사람의 발경인 법칙과 질서 안에 유폐하려고 하는 일은 종종 있다. 그러나 자연을 창조하시고 관할하시는 하나님이 어찌 그렇게 법칙과 질서 안에 유폐될 것이냐? 성경은 신본주의를 옹호하여 하나님의 전능을 선언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계시가 어디 나타났는가? 인본주의는 말하기를 사람의 경험이 진리의 계시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성경에 있다고 한다.

 

(3) 하나님의 본성이 어떠하신가?

 

인본주의는 항상 하나님의 본성을 해석함에 인생 자체에게 유리하도록 제한하여 해석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성, 민주성, 노복성을 주장하거나 범신론을 역설한 후에 사람이 곧 하나님이라고 결론한다. 유니테리안파의 체닝이 사람의 신성을 제창하였고 꽁트는 인본주의 신종교를 세울 계획을 하면서 “인도가 하나님”이라고 하였고 인도성전에는 30세의 젊은 부녀가 젖먹이 아이를 껴안고 앉아 있어 인도신을 대표하여 예배를 받을 것을 제언하였다.

 

이런 신관은 인생의 욕심을 채우고 교만을 충동함에는 좋겠지만 성경은 신본주의를 정확하게 잡아 하나님은 무한, 영원, 전지, 전능, 전선, 편재하시고 대주재, 심판주, 왕이심을 선언하니 어찌하랴? 세상에는 왕권을 제재하고 민권을 조롱하여 일승일강의 결과를 얻을 수가 있어도 하나님의 본성은 인생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결코 증감하지 못하니 하나님을 높여 경외하며 순종함만 같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적을 행하시며 예정을 행하심은 머누 전제적이니 사람의 발견인 자연법칙에 폐쇄를 당하라고 한다던가, 사람의 발견인 논리법칙에 수금을 당하라고 하는 것은 실로 크게 사리에 어두운 일이다. 하나님은 결코 미천한 인생의 이론 때문에 구금되실 분이 아니시다. 그대들은 모름지기 하나님께 경외 순종하여 그의 진노를 면해 좋을 것이다.

 

(4) 그리스도는 누구시었느냐?

 

인본주의는 그리스도를 낮추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 뿐이라고 하거나 하나님이라면 그는 가치적 신 뿐이라고 한다. 그리해야 그는 인생의 모범이 됨에서 더 유익한 인물이 되실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신성의 계시는 성경에 가득 실려 있어 도저히 부인할 수 없으니 어찌하랴?

 

성경은 그리스도를 영원하시고 선재하시던 성자요 심판주요 만왕의 왕이라고 하니 그것은 곧 신본주의인 것이다. 차라리 성경의 선언 그대로 믿어서 그를 만유의 주로 높임이 더욱 나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선지자 뿐이니 영웅이나 술이니 하여 천 마디 만 마디 말로써 그를 이름한들 그의 신성이 없어지거나 감소될 바가 아니다.

 

(5) 인생의 의의와 목적이 무엇이냐?

 

인본주의는 말하기를 사람 자체의 생활을 개선하여 좀 더 행복한 생을 사는 것이 그 목적이요 거기에 인생의 의의가 있다고 한다. 1929년 9월에 미국 뉴욕시에 있는 포터 박사는 인본교라는 명칭으로 일종의 새 종교를 세우고 구기독교와 신인본교의 차이를 비교하는 9가지 조목을 제시하였는데 그 첫 조목에 인생의 주요 목적은 자기를 개인적으로 또는 종족적으로 개선함이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이라고 한다. 포터씨의 선언 둘째 조목에는 “사람은 고유적으로 선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고유적으로 악하여 다 죄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면목을 상하게 하는 말이다. 근일의 인물들은 죄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앞에 교만이란 것이 쓸모없으니 겸손히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음만 같지 못할 것이다.

 

(6) 구원의 의미는 어떠한가?

 

그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그치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함이 아니라 사람 자체의 개선을 꾀함이라고 한다. 또 그 개선공작도 자기의 자력갱생이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함이 아니라고 한다. 포터는 개선이 사람 안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사함을 받고 심판을 면함이 구원이요 성령으로 거듭나 천국에 들어간다고 역설한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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