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②] 총회와 총신대 '평양신학교와 총신대 법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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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
기사입력 2020-08-06 [22:05]

▲ 평양신학교  © 리폼드뉴스

위에 건물을 멀리서 바라본 건물(아래 왼쪽 건물, 훗날 건물 앞에 나무가 심어져 있다.)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설립 12주년 기념으로 ‘총회와 총신대’라는 주제로 기획특집 연재를 준비했다(편집자 주)

 

【(리폼드뉴스)교회가 설립되어 성장하면서 교회는 많은 재산이 확보된다. 여기에 교회 분쟁은 필연적이었다. 교회분쟁은 결국 재단을 설립하여 교회재산 등록을 위해 재단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30년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내 전국의 장로교회는 984개 교회로써 1천 교회에 이르는 시점이었다. 최초로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는 노회는 평양노회와 전남노회였다. 전남노회는 1930년 9월 2일자로 총독부로부터 전남노회 재단법인이 설립인가를 받았다.


제정민법 이전 일제치하에서 「조선민사령」 은 1911년 3월 25일 총독부법률 제30호로 제정된 「조선에시행할법령에관한건」에 근거하여 교회 재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미 가톨릭교회는 1920년 5월 8일에 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재산을 관리했고, 미국 감리회선교부는 1920년 12월 18자로 미국감리교회유지재단이 설립되었다.

 

불교는 1922년 12월 30일자로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종교단체가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관리할 경우, 총독부는 종교단체의 재산에 관한 관리감독을 통하여 종교단체를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었다. 장로교회는 다른 종파에 비해서 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장로교는 다른 교파에 비해 총독부에 덜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재단법인 설립이 늦게 이루어졌다.

 

평양신학교 신축 1922년  © 리폼드뉴스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3회 총회(1924.9.13.)에서 평양신학교 보고에서 마포삼열 선교사가 교장직에서 사임하고 원로교장으로 임명했다. 후임교장으로 라부엘 선교사를 임명했다고 보고했다. 제14회 총회(에서는 "본교 재단법인 인가를 엇은[얻은] 일이오며"라고 신학교육부 보고가 있었다. 이에 총회는 보고를 받았다.

 

이로써 평양신학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재단법인 재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유지재단’이 설립되었다. 평양신학교가 1922년에 신축한 교사는 재단법인으로 등록하게 되었다(위의 신축 사진 참조).

 

교회뿐만 아니라 신학교 역시 재산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조선총독부로부터 법인를 설립하여 관리하하엿다. 1901년 선교사들과 미국 선교회본부의 재원으로 설립된 평양장로회신학교는 당시 ‘재단법인 재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유지재단’인 법인을 구성하여 운영하였으며, 마포삼열기념관 및 신학교 재산을 유지재단에 등록하여 관리하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극에 달한 1937년에는 조선총독부가 한글 사용을 전면 금지 시켰다. 1938년에 이르러서는 더 악랄하였다. 제27회 총회(1938년)에서는 신사참배를 가결하도록  하였다.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4년째의 해인 1942년 제31회 총회를 마지막으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폐쇄되었다. 특히 1942년도 총회 회의록은 일본어로 기록된 아픔이 있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1938. 9. 10.)에서 신사참배 결의하자 선교부는 9. 20.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평양장로회신학교 폐교하였다.

 

선교사들이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폐쇄하자 1941년 12월 말에 유지재단은 당국의 귀속재산이 되었다. 후평양신학교는 이같은 적산재산을 이용하여 신학교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후평양신학교 당국은 이 적산이 되어 버린 평양신학교 재산을 매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재27회 총회(1938) 신사참배를 결의당시 총회임원들(앞줄 좌로부터 서기 곽진근 목사 홍택기 목사(중앙), 김길창 목사  © 리폼드뉴스

 

후평신학교가 평신학교 교사를 현재 사용하고 있지만,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여전히 적산으로서 당국에서는 적산관리에 편의를 위해서 빨리 이것을 처분할 것을 승낙한 고로 본교 이사회에서는 사무간사를 증선하여 반도 각 교회에 있는 총회부담의 기본금 및 개인 독지가의 헌금 등을 빨리 모아서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이것을 매수할 수 있도록 개획하고 있음. 교역자 및 신도들은 이것에 적극적으로 원조해 주실 것을 바람(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제31회 회의록, p. 12.)

 

제31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 보고한 후평양신학교의 공식 이름은 ‘평양신학교’였다. 선교사들에 의해 폐쇄된 신학교의 법인화 된 공식 명칭은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였다. 우리는 이를 평양신학교라 칭한다. 이같은 전 평양신학교는 선교사들 중심의 신학교로 신사참배를 반대하였다. 그래서 조선총독부와 불편한 관계하에 있었다.


그러나 후평양신학교(교장 채필근 창씨개명은 좌천필근)는 신학교 운영을 ‘신학의 동양정신적 연구로 기독교의 일본화’, 신학교에서 3주간 특별강좌로 진행인 ‘신학강습회’의 목적을 ‘기독교 확립 및 일본화에 대해서 아주 필요한 집회(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제31회 회의록, p. 12-13.) 로 제31회 총회에 보고한 것으로 보아 조선예수교장로회 정체성과 정통성을 계승하는 신학교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사들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평양신학교를 폐쇄했다. 이 경우 법인으로 관리하고 있는 재산은 조선총독부로 넘어간다. 모든 재산도 포기하는 일은 있어더 신앙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결국 신학교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과연 현재 학교법인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를 설립한 총회가 신앙을 위해 학교법인 재산을 포기할 수 있는가? 초기 평양신학교를 운영했던 선교사들은 그렇게 했었다.

 

▲ 총신대, 1969년 가을 사당동 초창기 총신교수들, 박형룡 학장(위 사진 윗줄 왼쪽부터 안용준, 이상근, 박윤선, 박형룡, 명신홍).  © 리폼드뉴스

 

본 교단 직영신학교인 총회신학교는 1955년 남산에 있을 때에 각종학교(各鐘學校)로 인가를 받았다. 인가받은 각종학교는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연동측인 통합측이 이탈해 간 후 1959년 10월에 연동측 인사들에 의해 학교명을 “장로회신학교”로 변경하여 이 신학교에 귀속시켜 버렸다. 이렇게 되자 승동측인 합동측의 총회신학교는 무인가신학교가 되어 버렸다.

 

총회신학교 이사회는 1967년 5월 4일 정부로부터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문교대 1042.1-972호)을 인가받았다. 이어서 한 달 후인 6월 3일에 문교부로부터 대학령에 준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초대 이사장에는 사당동 학교부지 18,000여 평을 기증한 부산 부전교회 시무장로인 백남조 장로가 선임되어 취임했다. 이렇게 하여 총회신학원은 재단이사회 15명, 각 노회가 파송한 32명으로 구성한 전체이사회, 재단이사회와 전체이사회 이사들을 중심으로 한 21명의 실행이사회를 구성하여 학교를 운영했다.

 

  © 리폼드뉴스


총회신학원은 1969년 12월 24일 각종학교에서 정식 대학 명칭을 얻게 되었다. 학교명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이라는 긴 명칭을 얻게 되었다. 학교법인으로 인가를 받은 재단이사회는 1967년 6월 15일에 첫 재단이사회를 소집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단법인의 공식명칭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이었다. 총회신학원이 대학인가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다가 지난 2013. 1. 30.에 정관 제2조(명칭)인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2018년 총장과 아사호히에 대한 총신대 사태, 수업이 전면 거부된 가운데 새벽에 일부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는 도사관 출입이 폐쇄됐다.  결국 이사들의 불법행위로 전원 해임되고 임시 잏사가 파송되었다.  © 리폼드뉴스


그 이후 2013. 3. 22. 재단이사회에서 “본 법인 정관의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 정관’의 표제를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정관’으로 변경”을 결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본 교단 직영신학교가 교과부로부터 대학인가를 받기 전의 학교명칭인 ‘총회신학원’을 학교법인 명칭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으로 사용해 왔지만 지금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로 법인 명칭을 변경하였다.

  

 학교법인 법인 정관에 반드시 "정관변경은 총회(합동)의 승인 후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는 규정을 두어야 총회 직영신학교로 법률적인 하자가 없게 된다. 이사회 결의에 앞서 총회 승인이 먼저야 한다. 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정관변경은 이사회의 결의에 의한다"라고 하면 이사회가 짜고 마음만 먹으면 사유화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총신대 정관파동이었다.

 

▲  총회장 백남선 목사와 재단이사장인 김영우 목사의 합의서 서명, 이런 합의서 문제 총신대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리려 그들의 주장이 강화되고 말았다.   © 리폼드뉴스

  

통합 측, 고신 측, 침신 등은 하나같이 "정관변경을 총회 승인 후 이사회 결의"라는 규정으로 돼 있다. 그런데 총신만이 총회가 무관하게 이사회 결의로만 정관변경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마음대로 총회와 무관한 정관으로 변경하면 총회가 대항력이 없어져 버린다.


총신학교 학교법인 관계자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근거한 신학과 교리에 충실하면서 올바른 신앙에 근거한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핵심가치와 본질을 망각하고 학교법인을 누가 장악하느냐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본질보다 비본질에 목사직을 걸고 욕망의 충족을 위해 싸워왔다.

 

이제 총신대학교는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아 법인으로 운영할 경우, 그 법인의 법령과 종교단체인 총회와의 관계는 학교법인 정관만으로만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 학교 운영권을 모두 잃어버리고 뒤북만 치지 말고 이제 법인화에 대한 정확한 법적 제도를 바르고 알고 운영하여야 한다.

(계속)


다음글 : 누가 총신대 법인 이사가 되어야 하는가?

정이사 선임을 앞두고, '사학분쟁조정위원장에게 보낸 공개 편지'

소재열 목사(리폼드뉴스 발해인, 한국교회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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