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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④] 총회와 총신대 이사회 '2009-2014 순진한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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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기사입력 2020-09-05

 

▲ 2009. 2. 5. ; 홍광 장로의 사회로  법인이사회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창간 12주년 기념으로 총회와 총신대라는 주제로 기획특집 연재를 준비했다(편집자 주).

 

【(리폼드뉴스)2009년 2월 5일 오전 11시에 총신대학교 종합관 이사회실에서 법인이사회가 소집됐다. 이 소집은 홍광 장로를 임시사회자로 하여 이사장 직무대행 선임의 건을 포함하고 있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법인 이사회는 정수 15명 전원이 참석하였다.

 

임시사회자인 홍광 장로의 인도로 회의가 진행됐지만 11시에 시작한 회의는 두 번의 정회를 거듭하며 무려 5시간 동안 법리적인 갑론을박으로 논쟁이 이어졌다.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 대립과 갈등으로 고성이 오가는 분위기는 회의장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회의를 진행했던 홍광 장로는 권영식 장로와 함께 “총회장 명의의 총회 본부 공문인 김영우 목사와 이경원 목사에 대한 재단이사직 해임 조치에 대한 지시의 건”과 “총회 결의에 따라 총회장에게 사임서를 제출한 김삼봉 목사, 안명환 목사, 정준모 목사에 대한 사임서를 처리하라”는 “사임서 사본을 법인이사회에 통보한 건”에 대한 공문의 정당성 주장과 이 공문대로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 2009년 2월 5일 재단이사회에서  임시 의장인 이경원 목사가 김영우 목사가 이사장 직무대행에 선출되었음을 공포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그러나 이경원 목사와 김영우 목사를 비롯해서 이사들은 공문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홍광 장로로 하여금 법인이사장 직무대행을 선출할 것으로 촉구했다. 수적 열세인 홍광 장로측은 법인이사장 직무대행을 선출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법인이사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홍광 장로 반대측인 김영우 목사 측에서는 회의를 더이상 진행시켜 나가지 않는 사회자에 대한 성토가 계속되었다. 무려 5시간 동안 이러한 상황은 계속됐다. 결국 회의를 파행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짙게 보이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홍광 장로 반대측인 김영우 목사 측 이사들은 결국 사회자 불신임안을 냈다.
 
사회자가 불신임안에 동의와 재청에 대한 가부를 묻지 않자 이때에는 동의자가 가부를 물을 수 있다는 법리적 유권해석에 따라 동의자인 이경원 목사가 가부를 물어 불신임안을 의결했다. 다시 회의 임시 사회자를 선출하기 위해 투표에 들어가 9표를 얻은 이경원 목사를 임시 사회자로 선정하여 법인이사회 이사장 직무대행 선출에 들어갔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자가 아닌 권영식 장로가 비상정회를 선포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자 곧바로 임시 사회자인 홍광 장로가 비상정회를 선포하고 회의장을 퇴장해 버렸다. 홍광 장로와 권영식 장로는 이미 총회 결의 상위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의해서 만70세 정년이 지난 이사이다.

 

홍광 장로와 권영식 장로를 비롯해서 김경원 목사, 이덕진 목사, 백성기 장로 이상 5명이 퇴장해 버린 가운데 김삼봉 목사, 김영우 목사, 이경원 목사 이기창 목사, 박해석 장로 최형선 목사, 백남선 목사, 안명환 목사, 정준모 목사, 한기승 목사 이상 10명이 투표에 들어갔다. 투표 결과 김영우 목사가 9표, 1표는 백표로 김영우 목사가 법인이사회 직무대행에 선출됐다.

 

직무대행으로 있던 김영우 목사는 이사회를 거쳐 제16대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2010년 첫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원 법인이사회가 1월 15일 총신대학교 이사회실에서 소집되어 교수 임용 및 관련 안건과 함께 이사장을 선출했다.

 

▲  이사장에 당선된 후  인사하는 있는 신임 김영우 재단이사장    © 리폼드뉴스

이사 정수 15인 중에 임기만료된 이사 2인과 불참한 이사 1인을 제외한 12인의 이사가 참석한 가운데 무기명 비밀투표를 실시하여 김영우 목사가 11표를 얻어 제16대 법인이사장에 선출됐다. 기권(백표) 1표가 나왔다.

그동안 2008년 11월 21일에 법인이사장인 김삼봉 목사가 총장서리에 임명되자 김영우 목사가 법인이사회 이사장 직무대행직을 수행해 왔다. 1년 넘게 이사장을 선출하지 못한 가운데 이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해 온 이사회는 이제 이사장을 선출하므로 재단이사회가 정상화 되었다. 

 

김영우 목사의 이사 임기가 종료되자 다시 이사로 선임하고 이사장에 재선임됐다. 총신대학교를 2012년 1월 3일 이사회를 거쳐 제16대 법인 이사장으로 김영우 목사(63)를 재선임했다. 법인 이사로 중임된 김영우 이사장은 이사 임기인 2011. 12. 27.-2015. 12. 26. 까지였다.

 

이날 법인이사회 내 신학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위원장에 이기창 목사, 서기에 배광식 목사, 회계에 한기승 목사, 위원에 김영우 목사, 정준모 목사 등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2012년 12월 19일 이사 임기가 만료되었던 안명환 목사와 백남선 목사는 이사로 다시 선임했다.

 

이사장에 재선임된 김영우 목사; 앞줄 왼쪽부터 김영우 이기창 목사, 뒷줄 왼쪽부터 최형선 이완수 배광식 정준모 김정훈 유병근 한기승 목사    © 리폼드뉴스

 

학교법인의 공식명칭은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이었다. 총회신학원이 대학인가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다가 지난 2013. 1. 30.에 정관 제2조(명칭)인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로 명칭이 변경하였고 2013. 3. 22. 법인이사회에서 “본 법인 정관의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 정관’의 표제를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정관’으로 변경”을 결의하였다.

 

2008년 이후 종교사학에서 일반사학으로 변경하는 문제로 총회가 엄청난 혼란이 있는 후 2013년에 이르러서 법인 이사회가 총회의 승인 없이 법인 명칭에서 ‘총회’라는 이름을 지웠다. 이때로부터 학교법인의 정관 파동이 시작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김영우 목사는 총회의 총회장까지 넘보며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하는 사태가 발생되었다. 역사는 권력을 다 가지려다 다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교훈해 준다.

 

2013년에 이르러 호남중부지역의 부총회장 몫으로 누가 제98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광주노회는 2013년 3월 12일 정기회로 소집하여 9월에 소집될 제98회 총회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백남선 목사를 추천했다. 제98회 총회의 부총회장은 호남중부지역의 몫이었다.

 

그동안 총신대학교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이사장인 김영우 목사는 2008년 최병남 총회장 때부터 갈등관계에 놓였다. 총회 측과 총신대 법인 이사회 측으로 양분되어 분쟁이 있었다. 이 때 백남선 목사는 언제나 이사장인 김영우 목사 편에 서서 도왔다. 백남선 목사는 이제 제98회 부총회장에 출마할 때 김영우 목사가 도와줄 것으로 믿었다.

 

 김영우 목사가 충청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을 받은 후 인사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그런데 김영우 목사는 백남선 목사의 출마에 아량곳 하지 않고 본인도 부총회장에 출마했다. 충청노회는 2013년 4월 2일 양항제일교회에서 제128회 정기회를 갖고 9월에 소집할 제98회총회 목사부총회장후보로 김영우 목사를 추천했다. 김영우 목사는 총신대학교 이사장으로 재임 중에 총회 부총회장에 출마하여 총회의 총회장까지 넘보고 있었다. 이 집념은 3년후에는 총신대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부총회장 후보에 출마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목사부총회장에 입후보한 박덕기 목사는 자격심사에서 탈락되고 제98회 부총회장 후보는 백남선 목사와 김영우 목사의 대결이었다. 같은 총신대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동지가 어느날 갑자기 적이 된 것이다. 당시 법인 이사회 이사장은 김영우 목사였으며, 부이사장은 안명환 목사, 백남선 목사였다.

 

13년 만에 제비뽑기 방식에서 직선제로 치러진 제98회 총회(1913) 선거에서는 백남선 목사(광주노회, 광주미문교회)가 1446표 가운데 828표를 얻어 당시 총신대학교 법인이사장인 김영우 목사(충청노회, 서천읍교회)를 200여표 차로 따돌리고 부총회장에 당선됐다. 김영우 목사 측에서는 6:4로 승리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김영우 목사 측의 표가 600여 표를 얻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총회 권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부총회장 투표에서 탈락한 김영우 이사장은 그해 12월에 전격적으로 총신대 총장으로 길자연 목사를 선출한다. 총신대학교 운영이사회는 2013년 12월 17일 오후 사당동 캠퍼스 세미나실에서 이사회를 소집하여 3차투표 끝에 총투표수 130표 가운데 90표를 얻어 총장에 당선됐다. 당선된 이후 재단이사회는 이사회를 소집하여 제5대 총장에 길자연 목사(72세, 왕성교회 원로목사, 한기총직전 대표회장)가 총장으로 선출됐다. 

 

백남선 부총회장은 2014년 2월에 총신대 학교법인 이사직에 대해 사임서를 제출했다. 사임서를 제출한 이유는 법인 이사회와 운영이사회가 교단 70세 정년제를 무시하고 길자연 목사를 총장으로 선임한 것에 대한 반대 표시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99회 총회(2014)를 앞두고 그해 봄 정기회에서 전국적으로 70세 정년이 지난 길자연 목사를 총장으로 선출한 행위에 대해 성토가 있었으며, 헌의로 이어졌다.

 

교단 70세 정년 결의를 위반하여 총장을 선출한 총신대 법인이사회 이사장과 운영위원회 이사장에게 총회공직 정지 5년에 처벌하도록 하는 건, 총신운영규칙에 70세 정년제를 삽입하는 건, 총신대 재정문제 특별감사 청원의 건 등이었다.

 

길자연 총장 사임서  © 리폼드뉴스

길자연 목사의 총신대학교 총장 자격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옥죄어 들어왔다. 결정적인 이유는 길자연 목사가 칼빈대학교 이사로 재임시 교육부장관이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을 내리자 길자연 목사는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2015년 6월 11일에 기각되어 패소처분이 나왔다.

 

이에 길자연 총장은 패소에 불복하여 항소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중에 사임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교육부와 총신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총신대학교에 상당한 불이익이 예상되었지만 이러한 불이익을 총장 개인 스스로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리하여 2015년 6월 25일 총신대학교 총장직을 사임했다.

 

길 총장은 2013년 12월 17일에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선임된 길 목사는 1년 6개월 만에 총장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2년 4개월의 임기를 남겨둔 상태였다. 길자연 목사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칼대학교 이사와 총장직에 대한 중징계의 결과로 총신대학교 총장이 될 수 없다는 사립학교법에 따라 총신대 총장을 그만 두자 총장 직무대행자로 심상법 교수가 총장 대행자로 선임되었다.

 

길자연 총장 사임 이후 법인 이사회는 개방이사 추천 문제로 이사회와 총회와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법인이사회는 개방이사를 선임하여 교육부에 임원승인을 요청하고, 더불어 임시만료된 이사의 재선임후 승인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총회가 선임한 개방이사 추천위원회 3인(허활민 목사, 서광호 목사. 심요섭 장로)과 재단이사회에서 추천된 추천위원 2인 등 5인이 개방이사 복수후보 2인을 2015년 7월 8일까지는 추천해야 하는 데 하지 않았다.

 

백남선 목사가 제99회 총회장에 취임했다.  © 리폼드뉴스

 

이런 상황속에서 2014년 9월 제99회 총회에서 백남선 목사를 총회장으로 취임했다. 제99회 총회는 총신대학교 이사에 대한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총신대학교 법인이사의 임기를 8년으로 제한하되 소급적용하기로 한 정치부의 안을 통과시키려는 개혁총대들과 이를 저지시키고 현행 대로를 주장한 측의 논쟁은 치열했으나 개혁총대들의 의지대로 90% 이상 찬성하여 결의했다. 결의내용은 “재단이사회와 운영이사회는 총회 70정년제와 재단이사의 임기는 4년으로 하고 한번만 연임 중임 할 수 있다. 단, 소급하여 적용하고, 개방이사도 포함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총회가 지시한 명령을 법인이사회가 순종하지 아니할 경우를 대비하여 후속조치로써 ▲재단이사 전원은 총회 내 모든 공직을 5년 동안 박탈한다. ▲재단이사장이 소속된 노회에서는 총회결의위반으로 재단이사장의 목사직을 정직한다. ▲소속노회 소속회원의 총회 내 모든 공직을 박탈하고 5년 동안 총대권을 제한한다. ▲총회 내 공직 정지된 자에게 직위를 계속 제공하는 모든 위원들도 총대권을 2년간 제한한다 로 결의됐다.
 
구체적인 기간도 명시했다. ▲재단이사회는 2014년 10월 10일 까지 모든 재단이사는 정관개정 동의서를 총회 서기에게 제출하고 ▲2014년 10월 30일 까지 총신대학교 규정을 개정하여 즉시 총회에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

 

▲ 정치부가 결의하여 본회에 내놓은 결의안은 총신대 재단이사회 이사 임기제한을 위한 이사회 정관을 개정하라 - 본회는 이를 90% 이상 찬성으로 결의하였다. 사진은 정치부 임원들이 본회에 인사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2014년 10월 30일 까지 총신대학교 규정을 개정하지 아니할 경우 “2014년 11월 1일 00:00로 재단이사 전원 공직정지에 대한 법적효력이 발생되며, 재단이사장에 대해서는 노회는 2014년 12월 31일까지 목사정직을 요구함은 물론 해당 노회와 노회회원에 대해 2015년 1월 1일 00:00부로 공직을 박탈하고 5년 동안 총대권을 제한했다. 정치부나 총회나 할 것이 없이 순진했다. 좋게 표현해서 순진한 것이지 무지했다. 총회의 교권을 휘두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이 기간의 총회 역사는 준비하지 아니하면 준비하지 아니한 것 만큼 혹독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지금도 총회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분명히 바라건데 전문 분야가 아니면 아는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교단)헌법이 있고, 각종 규약, 규정들이 있다. 총회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통일성과 일관성이 없다. 총회선거관리위원회의 규정은 매년 잘못 개정하여 웃기는 규정이 되어 버렸다.
 
99회 총회에서 결의한 구체적인 결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58) 남서울노회장 김재철 씨가 헌의한 제96회 총회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의 임기는 4년제이며 한번만 연임할 수 있다’ 결의 시행 및 위반자 처리의 건과
59) 평남 노회장 이용철 씨가 헌의한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의 임기는 4년제이며 한번만 연임 할 수 있다’ 결의 관련 명확하게 총회 현장에서 가결 확정 및 지시의 건은
 
“재단이사회와 운영이사회는 총회 70정년제와 재단이사의 임기는 4년으로 하고 한번만 연임 중임 할 수 있다. 단, 소급하여 적용하고, 개방이사도 포함한다는 내용을 총회 파회 후 즉시 실행하고 재단이사회는 2014년 10월 10일 까지 모든 재단이사는 정관개정 동의서를 총회 서기에게 제출하고 2014년 10월 30일 까지 총신대학교 규정을 개정하여 즉시 총회에 서면으로 보고한다. 운영이사회는 총회파회 후 즉시 시행하지만, 단 정기운영이사회에서 개정한다. 만약 재단이사회에서 2014년 10월 30일 까지 총신대학교 규정을 개정하지 아니할 경우 같은 해 11월 1일 00:00로 재단이사 전원은 총회 내 모든 공직을 5년 동안 박탈한다. 재단이사장이 소속된 노회에서는 총회결의위반으로 재단이사장의 목사직을 2014년 12월 31일까지 정직한다. 만약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소속노회 소속회원의 총회 내 모든 공직을 2015년 1월 1일 00:00부로 박탈하고 5년 동안 총대권을 제한한다. 총회 내 공직 정지된 자에게 직위를 계속 제공하는 모든 위원들도 총대권을 2년간 제한한다.’로 함이 가한 줄 아오며.”

 

그러나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이사회’ 이사장인 김영우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대표자 백남선 목사를 상대로 제기한 “제99회 총회에서 ①총신대학교 재단이사 임기와 관련 건, ②총신대학교 재단이사 및 개방이사 선출방식과 관련”된 결의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고 신청한 ‘총회결의효력정지가처분(2014카합1444)’ 소송에서 인용결정되고 말았다. 총회가 패소한 것이다.

 

김영우 이사장은 이러한 소송을 통해서 사립학교법에 의해 운영된 총신대학교는 법률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2008년 부터 학습하고 있었다. 학교법인인 총신대학교는 명목상의 총회직영신학교이지만 법률적으로 이사회 결의가 우선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 제93회 총회(총회장 최병남 목사) 때 법인 이사를 해임하는 결의가 법원에 무참히 무너져 패소한 사건에서도 부터 학습된 것이었다.

 

총회는 학교법인 이사회에 아무런 대항력이 없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즉 총회는 학교법인에 의해 종이호랑이인 것을 터득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총회와 무관한 총신대학교로 운영하기 위한 정관 파동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순진한 총회는 너무나 안이하게 대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정치 교권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지금도 총회는 이러한 순진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이사 체제에서 통합측 처럼 해 두지 아니하면 제2의 사유화 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104회 김종준 총회장은 사립학교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법률관계를 잘 알고 있어 다행이다.

 

이후로부터 총회와 법인 이사회와의 갈등은 건널 수 없는 관계로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는 총신대 법인 이사회 문제를 김영우 목사를 이사회에 관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총장이 되게 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뜻은 좋았는데 김영우 목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파 중심의 앞날을 예측하고 있었다.

 

2015년 이후 급박했던 총신대가 어떻게 돌아가게 되었는지를 살필 것이다. 총신대학교는 총회가 정상화 시킨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었다. 김영우 측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학생들의 동요였다. 학생들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실익이 없는 총신대학교의 사유화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학생들을 통해서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들은 학교 정상화를 학생들에게 구걸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자신들 때문이라고 한다. 웃기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은 법리적으로 접근해 볼 것이다.

 

누가 총회의 역적이며, 총회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돈으로 양심을 팔아 교권에 기생하는 사람들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이 이야기를 다음에 계속 이어가 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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