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김순정목사 설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 3:1-10

가 -가 +

김순정
기사입력 2020-10-16

▲     ©리폼드뉴스

   

오순절날 성령강림 사건이 있고 나서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제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 때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여러 사람이 메고 왔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함이었습니다(1-2). 유대인은 당시 기도 시간을 하루 3번으로 정했습니다. 오전 9, 정오, 오후 3시입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는 선천적인 불구자입니다. 당시는 이런 자들을 하나님의 저주나 벌로 여겼습니다.

 

1. 베드로와 요한을 만난 병자(3-5)

 

3-5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으로 가던 중 그 병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3-5). 병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했습니다.

 

우리 성경에 구걸하거늘”(헤로타 엘레에모쉬넨 람베인)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3개의 단어가 합해진 것입니다. 먼저 헤로타는 미완료형입니다. 계속해서 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자들에게 지금까지 구걸하여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엘레에모쉬넨은 구제를, 자비를, 긍휼을, 자선을이라는 목적격명사입니다.

 

끝으로 람베인은 부정과거 부정사입니다. ‘온전히 취하는, 꽉 잡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간절히 구제(자선)를 구했습니다. 그에게는 이 길이 유일하게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보고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목하여 그 병자를 보았습니다. 주목하여(아테니사스)라는 말은 원문에 부정과거분사입니다. 즉 자세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을 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즉 돈을 줄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구걸하여 돈을 얻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의 1-2절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그를 메어 왔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서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들이 이 병자를 성전 미문에 데려다 놓아서 사람들에게 구걸하도록 하고 그들이 다시 와서 그와 돈을 가져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병자는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과연 희망이 있었을까?

 

2.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6-8)

 

우리 성경에는 없으나 원문에는 접속사 ’(그러나, 그런데)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르되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그를 보고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6). 그 병자가 원하는 것은 은금입니다. 돈입니다. 그래야 자기도 먹고 살고 자신을 관리해주는 자들도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은과 금이 자신에게 없다고 합니다. 그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문은 없거니와”(우크 휘마르케이)라는 단어와 있는”(에코)이라는 단어가 대구를 이룹니다. 베드로에게는 은과 금 즉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은금과 전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님에 대한 호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나사렛 출신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구원자라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구속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분은 은금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영생을 주는 분, 구원을 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고 그 병자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그러자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찬송하니”(아이논)은 현재분사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병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준 것은 금은보화가 아닙니다. 당장 오늘을 사는 돈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 병자가 오랫동안 그렇게 원하고 바라던 것을 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질병에서의 회복입니다.

 

3. 완전한 회복을 주신 예수님(9-10)

 

사도들은 나면서부터 불구의 몸이 된 그에게 완전한 회복을 준 것입니다. 그 병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 영광을 사람에게 돌리고, 사람이 영광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9-10절을 봅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9-10). 모든 백성이 그 병자가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보고 과거에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로 인해 놀라워했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회복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부 출신 베드로, 요한이 그를 고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고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수술을 하거나 요술을 부린 것도 아닙니다. 단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들이 선포한 나사렛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분이 누구시기에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예수님은 당시 이 세상에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 요한과 함께 눈앞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름으로 병자에게 명령하니 일어나 걸었습니다. 뛰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선포하는 바로 그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시고,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분에게만 우리의 영생이 달려 있고, 구원이 달려 있고, 진정한 회복이 달려 있습니다.

 

결론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오늘 우리는 금은보화에 인생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영원한 보화가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리폼드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