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성경의 본질과 교육적 특성-딤후 3:15-17, 마 28:19-20, 벧후 1:19-21을 중심으로-(4)

김상훈(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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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20-10-24 [18:25]

  

이 논문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을 교수하는 김상훈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성경의 본질과 특성, 목적, 교육적 효과에 대하여 자세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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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가르치시는 분이셨고 그분의 사역은 가르침의 사역이었다. 사람들과 제자들은 가르치시는 그분을 가리켜 랍비’(또는 선생’)라고 불렀다(8:19; 9:11; 10:24-25; 12:38; 17:24; 19:16; 22:16, 24, 36; 23:8; 26:18, 25, 49; 9:5; 11:21; 14:45; 1:38, 49; 3:2; 4:31; 6:25; 9:2; 11:8 ).

 

랍비’(ῥ5αββί)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뜻이다. ‘선생’(디다스칼로스, διδσκαλος)은 히브리어 랍비의 헬라어 대응어이다(참고, 1:38,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다른 이들이 자신을 가리켜 선생’(랍비)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아니라 부정하시거나 이를 금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오신 선생’(3:2)이셨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오신 선생이라는 점, 그래서 그 선생으로서의 신적 기원과 가르침의 내용과 권위의 차이는 세상에 속한 다른 랍비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었다.

 

요한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씀’(로고스)이라고 한(1:1, 14; 요일 1:1; 19:13) 이유는 그분이 말씀하시는 분, 진리를 계시하고 가르치시는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진리를 계시하고 가르치시는 그리스도이셨다.

 

진리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사명이었고 성육신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였다(1:14, 16-17). 분명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대속적 죽으심을 통해 그를 믿는 많은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20:28)이 분명하다. 그런데 또한 그분은 그 자신의 죽음의 대속적 의미, 또 그와 관련하여 제자들이 따라야 할 본 등 모든 필요한 것들을 설명하시고 가르치셨다. 구원받은(받을) 이들이 알아야 할 말씀을 알려주고 이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도 상당하였다(, 20:17-28; 16:33; 17:8, 14 ). 말씀 없이 행하지 않으셨고 행하지 않고 말씀만 주신 적도 없으셨다. 그리스도는 말씀과 행함이 함께하신 분이셨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사역(teaching ministry)의 정점은 그분의 부활 후, 마지막 지상명령을 주실 때(28:18-20)일 것이다. 주님은 이때, “가르쳐 지키게 하라”(28:20)는 말씀을 주셨다. 마태복음 28:19-20에서 명령형 동사는 19절의 제자를 삼으라’(마쎄튜사테, μαθητεσατε)이다. 관련된 분사가 세 개인데, 마쎄튜사테 앞에 하나, 뒤에 두 개이다. 앞에 나오는 첫 번째 분사 포류쎈테스(πορευθντες, ‘가서’)제자를 삼으라의 전제가 된다. 제자를 삼기 위해 먼저 모든 족속에게일단 가야(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정과거분사를 쓴 것이다.

 

뒤의 두 개의 현재분사는 제자를 삼으라는 지상명령의 세부 내용이 된다. ‘세례를 주고’(밥티존테스, βαπτζοντες), ‘가르치면서’(디다스콘테스, διδσκοντες)는 모든 족속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교회의 지속적인 사역 내용을 가리킨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일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구원의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반면에 가르치는 일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세워져 가는 일과 관련이 된다. ‘제자를 삼다’(마쎄튜오, μαθητεω)제자’(마쎄테스, μαθητς)에서 왔고 이는 본래 배우다, 깨닫다의 만싸노(μανθνω)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자. 가르치지 않고 배울 수 없다.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은 사실 그들로 배우게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의 모든 말씀을 배우게 하고 이를 지킬 수 있게 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다 지키게”, 그같이 가르치라고 하신 것이다. , 그들로 배우게 하라그래서 지키는 자가 되게 하라는 말씀이다. 가르침 없이 배울 수 없고 배움() 없이 지킬 수 없다. 그리고 지킬 때에야 참 제자가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사역을 이어받았다. 그런 이유로 교회에서는 가르침의 사역이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지속된 배움의 교육을 통해 성도들이 말씀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이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좀 더 강조하여 직역하면,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하라고 명한’) ()은 모두 다이다. 말씀의 범위는 ’(모두)이다. 제외되는 것이 없다. 어느 것도 누락될 수 없다.

 

하늘의 랍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가르침의 사역을 수행하셨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과 교회에 가르침의 사역을 계속할 것을 명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빼놓거나 소홀히 하는 것없이 가르쳐 제자들로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성경은 가르침(교훈)을 위한 거룩한 책이다. 성도를 가르치는 일(교육)을 위해 주어졌다. 그리고 그 일에 적합하고 유익하다. 이 사실을 기억하자. 성경은 교육을 위한 하나님의 책이다. 가르침과 배움(informative)이 없이 하나님의 사람이 형성되지(formative) 않고 그분의 선한 일을 위한 행동의 변화(transformative)가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 ‘책망에 유익하다(딤후 3:16). ‘책망’(엘레그모스, ἐλεγμς)교정, 책망, 질책’, ‘옳지 않거나 잘못된 것을 꾸짖는 것이다. 성경이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준비된 자가 되려면 옳지 않은 일의 그 옳지 않음을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하고 옳은 것을 선택해 나갈 수 있는 식견(통찰력)이 필요하다. 또한 옳지 않은 일이 있었을 때, 그릇됨을 깨닫고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요구되는데 그것이 성경이 줄 수 있는 유익이다.

 

성경의 책망의 기능 때문에 생각과 삶의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밝은 빛이 비췰 때 어둠의 자리에 변화가 일어난다. 냄새가 역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책망하는 역할을 성경이 맡았다. 그래서 성경이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의 기준이다. 의와 불의, 깨끗함과 더러움, 정직과 부정직, 겸손과 교만,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순수함과 혼잡함, 헌신과 야욕, 빛과 어둠, 선과 악을 성경은 구분한다.(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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