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지혜와 구속사의 관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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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20-12-26 [18:32]

  

▲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ydney Greidanus,1935-)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김순정) 우리는 전도서를 접하면서 때로는 허무주의를 강조하는 책, 인간의 삶을 다루는 책이라는 시각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도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도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의 사고에서 자주 나타났던 불균형을 이따금 마치 기독교의 삶의 문제가 아닌 기다림의 문제인 것처럼 제시했던 불균형을 바로잡는데 기여한다(Iain Provan, Ecclesiastes, 42).

 

전도서는 단순하게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비결을 제시해 주거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사는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 전도서를 기록하게 하실 때에는 그 목적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읽는 대상자들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던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를 가지고 주신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는 계시의 말씀이다. 단순히 우리에게 현자가 되라, 자유를 배우라, 자족하는 마음을 배우라, 지혜자로 살아가라는 등의 도덕적이고 윤리적 교훈을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와 구속사의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이런 시각은 그의 저서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잘 나타난다. 우리는 그레이다누스의 이 저술을 살피면서 전도서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지혜는 구속사의 시각을 보충한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여러 성경 장르와 대조적으로 지혜문학은 강력한 하나님의 행위를 다루지 않는다라고 했다(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5).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은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창조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또 출애굽기 14:2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홍해를 가르시고 바닷물이 좌우의 벽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게 하신다.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노래한다.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15:1-3)

 

즉 홍해를 가르신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 구원, 강력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 곳곳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모세5, 역사서, 선지서 등 거의 대부분의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혜문학에서는 구체적으로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찾을 수 없다. 즉 지혜는 하나님과 현실을 보는 자기 충족적이고 대안적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G. Goldsworthy, Gospel and Kingdom, 142).

 

다시 말해서 지혜는 구원역사의 시각을 보충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세상을 살아가는 구속받은 사람의 신학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는 구원역사만큼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이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5). 지혜문학 특히 전도서의 지혜라는 것은 세속에서 말하는 지식의 활용능력, 이치를 빨리 깨우치고 사물을 정확히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사리를 분별하고 적절하게 처리하는 능력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혹자는 지혜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지각과 지식을 적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생성하는 능력이라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혜를 현명, 슬기, 통찰력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동양의 철학에서는 군자의 4가지 덕목 중 하나로 본다.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따라 철학을 philosophy라고 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어인 φιλοσοφία에서 온 것이다. 이상국가론에서 그는 왕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전도서에서 말하는 지혜가 이런 철학적인 지혜인가? 그렇다면 철학적 지혜, 정신적 능력, 사리 분별력, 현명, 슬기, 통찰력이 과연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시각을 보충해 주는가?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그레엄 골즈워디와 함께 지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세상을 살아가는 구속받은 사람의 신학이라고 했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5). 그렇다면 전도서의 지혜는 세상이 말하는 지혜가 아니다. 철학이 말하는 지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지혜는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지혜는 일반적인 지혜의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계속)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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