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지혜와 구속사의 관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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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기사입력 2021-01-02 [19:32]

▲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ydney Greidanus,1935-)     ©리폼드뉴스

     

2. 지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다

 

그레이다누스는 전도서의 지혜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전도서는 창세기 앞부분에 기록된 구속사의 시작과도 분명히 관련이 있다. 창세기 1장이 하나님을 주권적 창조자라고 가르치듯 전도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5)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3:14)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8:17)

 

창세기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시간을 정하시고 계절이 있게 하신 것을 가르치듯이 전도서는 하나님이 시간을 정하시고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가르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3:1-8)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시간도 창조하시고, 정하시고 모든 것을 정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준다. 다른 성경과 같이 전도서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레이다누스는 창세기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듯 전도서는 지금도 이 세상에서 선을 찾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예를 들면 2:24; 3:12-13; 5:18). 창세기가 하나님이 인간을 정직하게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듯 전도서도 그렇게 가르친다(7:29). 창세기가 인간은 하나님과 사귀도록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듯(1:27; 2:15) 전도서도 그렇게 가르친다(12:13)”고 했다(전도서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5).

 

창세기 1장을 자세히 보면 좋았더라”(토브)라는 단어가 7회나 쓰인다(1:4, 10, 12, 18, 21, 25, 31). 이 단어는 단지 좋다는 형용사적 의미도 있으나 명사적 의미로 선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보시면서 좋다고 하신 것은 그것들이 선하게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선(토브) 그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도 역시 선한 것이었다. 전도서는 지금도 이 세상에서 선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24) 이 구절에 선이나, 좋다는 단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역성경에는 어느 정도 그 의미를 보여준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이라는 단어와 나은 것이라는 단어이다. 공동번역은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만큼 사람에게 좋은 일은 없다. 내가 보기에 물론 이것은 하느님께서 손수 내리시는 것이다로 번역한다. 역시 즐기는 일, 좋은 일 등으로 번역하여 그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도록 해준다.

 

표준새번역도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알고 보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라고 번역한다. 여기서는 보람을 느끼는 것, 좋은 것이라고 번역했다. 현대인의 성경도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나 나는 이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라고 번역한다. 여기서는 만족을 느끼는 것, 더 좋은 것 등으로 번역한다. 우리말성경도 먹고 마시고 하는 일이 잘되는 것보다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내가 보니 이것 또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라고 번역한다. 여기서는 잘 되는 것, 더 좋은 것으로 표현한다.

 

바른성경도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서 수고하는 가운데 마음으로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니, 이것도 역시 내가 보기에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라고 번역한다. 여기서도 낙, 더 좋은 것 등으로 번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문에는 좋다, 선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토브)2회나 나온다. 개정판 성경만 의미가 모호하게 번역되어 있다.

 

또한 창조 세계에서 선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구절은 3:12-13절이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원문은 12-13절에 선(토브)이라는 단어가 3회나 반복된다.

 

전도서 5:18절에서도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라고 한다. 원문은 이 구절에 선(토브)이라는 단어가 2회나 쓰였다. 즉 아직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서 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정직하게 창조하셨다고 한다. 전도서 7:29절에 보면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고 한다. 여기 정직하다(야솨르)는 단어는 정직, 곧은, 옳은 것등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인간을 정직하게 창조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타락한 것이다(3:6).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과 교제 즉 사귐이 있도록 창조하셨다. 창세기 1:27절을 보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것은 인격체로 창조하셨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교제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2:15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교제의 대상(인격체)으로 창조하실 뿐 아니라 대리왕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의 세계를 다스리는 자, 관리하는 자인 것이다. 이를 대리왕이라고 한다.

 

전도서 역시 이를 가르친다. 전도서 12:13절에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한다. 사람의 창조의 목적을 잘 보여준다.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행복과 만족이 주어진다. 전도서는 이를 다시금 깨우쳐주고 있다. (계속)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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