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재2]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에 대한 논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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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형
기사입력 2021-02-25 [19:15]

▲ 유창형 교수(칼빈대학교 조교수, 역사신학)    ©리폼드뉴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에 대한 논쟁'에 대한 유창형 교수(칼빈대학교 조교수, 역사신학)의 논문을 연재한다(편집자 주).

 

 Ⅱ. 이 교리를 부정하는 학자들

 

1.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알란 클리포드(Allan C. Clifford, 1941-현재) 에 따르면, 리처드 백스터는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가 매우 의심스러운 구절이라고”1)하였다.

1) Allan C. Clifford, Atonement and Justification: English Evangelical Theology 1640-1790 - An Evalua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191; Richard Baxter, Richard Baxter’s Catholic Theologie plain, pure, peaceable, for pacification of the dogmatical word-warriours who, 1. by contending about things unrevealed or not understood, 2. and by taking verbal differences for real (London: Printed by Robert White, 1675), 59. “But that phrase is of large and doubtful signification.” 접속일. 2020.01.10. https://quod.lib.umich.edu/e/eebo/A26883.00 01.001/1:46?rgn=div1;view=fulltext.

 

 백스터는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만약 그 의미가(전가된 그리스도의 의에 의한 칭의) 완전한 거룩과 순종과 고난에 의한 그리스도의 공로와 배상이......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혹은 자연적 법적인 의미로 우리가 그런 모든 일을 행했다는 의미로 ......완전하고 즉각적으로 우리의 것으로 가정되거나 간주된다는 의미라면, 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가 옳다면, 신자는 용서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율법을 성취함으로써 무죄하다고 간주된 사람은 결코 죄를 범했다고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그리스도의 배상(satisfaction)을 무효로 혹은 헛되게 만들거나, 확실히 우리에게 전가될 수도 없고 우리에게 유용하지도 않다.”2) (괄호는 논자의 첨가임).

2) Richard Baxter, Richard Baxter’s Catholic Theologie, 59.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백스터는 분명하게 의의 전가 교리를 부인했다.


백스터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가 율법폐기주의로 가는 것을 우려하여 신율주의를 주장하였는데, 그의 신율주의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여 최종적으로 칭의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가 율법의 교훈을 폐지하지 않는다”3)

3) Allan C. Clifford, Atonement and Justification, 194.


는 것을 의미한다. 즉, 칭의된 자도 복음의 명령을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마이클 브라운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대한 백스터의 가르침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했다.4)

4) Michael G. Brown, “Not by Faith Alone: The Neonomianism of Richard Baxter,” Puritan Reformed Journal 3.1 (2011): 133-152.

 

첫째, 백스터는 그는 약 10년 동안 단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이 전가된다”는 관점을 선호하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 신자에게 전가된다는 “개혁파 정통주의에 의해 통상적으로 주장되는 신앙을 거절”했다.5)

5) Baxter, Aphorismes of Justification with Their Explication Annexed (1649), 44-54.; Michael G. Brown, “Not by Faith Alone,” 145. 또한, 백스터는 “우리의 복음적 또는 새 언약의 의가......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확증하는 것은......율법폐기론이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Baxter, Aphorismes, 65.


둘째, 백스터는 인간의 실제적인 죄들이 그리스도에게 전가되고 십자가에서 객관적으로 처벌받았다면, 이후에 태어난 신자들은 믿기도 전에 무죄한 죄가 됨으로 모순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 신자들에게 전가되었다면 신자들은 더 이상 선을 행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런 백스터의 입장은 영원한 칭의를 주장하는 율법폐기론자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6)

6) Rich. Baxters Apology Against the Modest Exceptions of Mr. Thomas Blake (London, 1654), 13. 원종천은 이 당시 반율법주의자들이 믿음과 회개도 그리스도께서 신자대신 다 했다고 주장했음을 지적한다. 원종천,『성화의 부진과 칭의의 고민』 (용인: 킹덤북스, 2009), 242-43.


 백스터는 두 가지 의를 주장했다. 하나는 율법의 의인데 그리스도는 죄인의 위치에서 벌을 받음으로 구약의 엄격한 율법의 의를 만족시켰다. 둘째는 복음적 의로서 신자의 믿음이다. 백스터는 “사람의 칭의의 근거와 조건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보다 신자의 믿음이라고” 믿었다.7)

7) Michael G. Brown, “Not by Faith Alone,” 147; Baxter, A Treatise of Justifying Righteousness, In Two Books (London, 1676), 178.


 이런 관점은 믿음이 의가 아니라 도구라는 개혁파의 주장과 상반된 것이다.


셋째, 백스터는 신자의 믿음이 칭의의 주된 근거 혹은 조건이고 복종은 이차적인 근거 혹은 조건이라고 본다.8)

8) Baxter, Aphorismes of Justification, 110; Michael G. Brown, “Not by Faith Alone,” 148. 이런 백스터의 주장은 칭의에서 믿음의 의를 주된 원인으로, 행위의 의를 종속적인 것으로 말한 칼빈과 유사하다. 유창형, “칼빈의 칭의론에서 믿음, 선행, 영생의 관계,” 「개혁논총」 13(2010): 208, 각주 62번을 참조하라.


 그는 이것을 소작농이 주인에게 주는 “마른 후추”로 비유했다. 첫 임대 계약은 주인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완전히 지불했다. 그리고 둘째 계약인 복음적인 계약을 맺었는데 이것은 한 페니와 같은 지극히 작은 복종하는 믿음으로 아들과 한 계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 페토는 그리스도께서 보증인으로서 완전히 지불했기 때문에 한 페니도 신자가 칭의를 위해 지불할 것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하였다.9)

9) Samuel Petto, The Difference Between the Old and New Covenants (London, 1674), 200.

 

넷째, 백스터는 우리의 처음 믿음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신랑으로 맞이하게 했는데, 그 결혼이 유지되는 조건은 우리의 신실함이며, 만약 간음하면 결혼 계약은 깨지게 된다고 하였다.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는 “믿음, 회개, 사랑, 감사, 신실한 순종, 끝까지 견인함”으로 칭의되고 영원한 영광을 얻는다고 하였다.10)

10) Richard Baxter, Rich: Baxter's Confession of his Fatih, Especially concerning the Interest of Repentance and sincere Obedience to Christ, in our Justification & Salvation (London, 1655), 56; Baxter, Treatise, 163.

 
결론적으로, 이런 백스터의 관점은 최초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되지만 최종칭의는 믿음과 회개로 된다는 웨슬리의 관점과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유보적 칭의론을 주장하는 N.T. 라이트와 유사한 것이다. 반면에 한번 칭의는 최종적인 칭의11)라고 한 서철원과는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다.

11) 서철원, 『서철원박사교의신학 V 구원론』,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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