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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박사 신학논단] 고대교회의 성경해석

정규철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및 이사, 예수인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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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기사입력 2021-06-04

 

 정규철 박사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성경해석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앞섰지만, 기독교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고대 교부들이 기독교적 성경해석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영해라는 이름으로 유대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아직도 단절되지 않고 있으나 고대교회에서 정초된 기독교의 근본 교리는 기독교의 확고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아서 고대 교회의 일들은 불과 엊그제의 일일 것이다. 

 

1. 기독교 근본교리 작성 

 

고대 교회에서 풍유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고대의 교부들은 예수님의 신성교리(325년)와  삼위일체 교리(381년)와 기독론 교리(451년)를 확정했다. 이 교리는 사람들의 창작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교회가 공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되었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 출생의 아리우스(Arius, 250-336)의 도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295-373)가 응전하여 325년 니케야 공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본질이라는 ‘예수의 신성’을 교리화했고, 성령이 피조되었다는 영항쟁자들의 도전에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 대바실과 닛사의 그레고리와 나지안주의의 그레고리가 응전한 결과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본질’이라는 성령의 신성을 공식화하여 ‘하나의 실체에 세 인격’이라는 삼위일체교리를 정립했다. 또한 아폴리나리우스와 유티커스의 단성론과 네스토리우스의 두 본성의 두 인격이라는 도전에 대하여 레오 감독 등이 응전함으로 451년 칼케돈 공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의 한 인격’이라는 기독론 교리가 확정되었다. 

 

(1) 니케야 신경 (Symbolum Nicaenum)과 예수님의 신성교리(325년) 

 

콘스탄티누스는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아레오스 논쟁’이 애굽과 리비아 유역으로 퍼져나가 교회가 평화롭지 못하고 제국이 어렵게 되자 중재에 나섰다. 자신의 교회 담당 조언자 코르도바(Cordova)의 주교인 ‘호시우스’를 알렉산드리아에 보내 화해를 추구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사소한 문제니까 해결이 잘 될 줄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기독교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에큐메닉 공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하였고, 325년 318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295-373)는 알렉산드리아 출생의 헬라 교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통해서 일하시고, 이 말씀 역시 참 신이며 아버지와 동일 실체라고 확정했다.1)

1) 니케아 신조가 만들어진 후 약 10년이 지난 즈음에, 이단으로 정죄된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아리우스는 정치력을 이용하여 니케아 정통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함하고 콘스탄틴 대제를 부추겨서 아다나시우스를 파직시키고(335년), 추방했다(336년). 그 후 아다나시우스는 20년 동안 6번이나 추방을 당하였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실체’(homoousion)로 출생하였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정통 신앙이 승리하게 되었다. 황제는 ‘호모우시온’(homoousion)을 넣도록 권고하여 호모우시온이 니케야 신경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니케야 공회의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에큐메닉 공회의로 ‘정통 기독교를 확립’하였다. 니케야 신경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는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조물주를 믿는다.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데 그는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신 독생자이다. 이는 아버지의 실체에서 나셨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시다. 빛에서 나온 빛이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출생하셨고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동일실체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만들어졌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내려 오셨고 육신이 되사 사람이 되셨다. 고난 받으시고 제 삼일에 살아나시고 하늘들에 오르셨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그가 오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그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고 그가 나시기 전에는 있지 않았다거나 존재하지 않은 것에서 만들어졌다거나 혹은 다른 실체나 다른 본질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가변적이거나 변이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공교회는 정죄한다.”2)

2) 서철원, 「교리사」 (서울: 총신대출판부, 2003), 240-41.

 

(2) 콘스탄티노플 신경(Constantinopolitanum Oecuminicum, 381년)와 성령의 신성

 

니케야 공회의 이후 반세기에 걸쳐 진행된 ‘호모우시온’에 대한 투쟁은 362년 알렉산드리아 공회의에서 호모우시온을 교회의 신앙으로 확정하였다. 그러나 ‘지방 공회의’의 결정이 되어, 에큐메닉 공회의의 결정이 있어야 했다. 이 호모우시온에 대한 최종 결정을 위해 제2차 에큐메닉 공회의가 소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령에 대한 논의였다. 성령이 피조물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므로 아들에게 적용된 호모우시온이 성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성령이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확증이 요청되었다. 3조의 확립에 있어서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이 크게 기여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는 성령의 동일실체 혹은 성령의 신성을 확립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의 동일신성’이라는 교리를 확정하였다.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동일실체’임이 확증되었다. 이 공회의에서는 이단들을 정죄하고 니케야 정통 신앙을 가진 자들의 손에 교회가 맡겨지는 일을 황제의 뜻을 따라 결정하였다.

 

그러나 동방 주교들만 모였기 때문에 ‘성령의 나오심을 아버지로부터로만’ 확정하여 동서교회간에 오랜 논쟁이 되었다. 이로써 두 교회가 분열하는 씨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갑바도기아 교부들(Basil the Great, 329-379, Gregory of Nazianzus, 330-390, Gregory of Nyssa, 335-395)에 의해서 세 위격들의 특성이 아버지는 비출생성, 비유래성, 아들은 출생과 로고스, 또 성령은 출래와 성화로 확정되었다. 

 

대 바실(Basil the Great)가 ‘위격’에 상응하는 용어로 ‘프로소폰’(πρόσωπον) 대신에 ‘휘포스타시스’(̀̀πόστασις)를 선택한 것은 후자가 삼위에 실존하는 개체적 특성을 보다 강하게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단일성은 그분의 ‘우시아’(οσία)이며, 삼위일체는 ‘휘포스타세스’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3)

3)  Basil, Letter 236. 6; NPNF II, 8. 278; 박종훈, “성 바실의 목회신학과 사회적 실천에 관한 연구”(박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대학원, 2017), 30.

 

 바실레오스는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 한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한다. 수에 있어서 한 하나님이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 한 하나님이시므로 삼 위격이 다 참 하나님이심을 밝힌다. 바실레오스는 처음부터 성령의 신성을 전제하고 출발하였다. 바실레오스는 아레안파가 아들과 성령의 존엄을 낮추어서 세 위격들이 전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항하여 성령의 위격이 동일실체로서 삼위의 한 위격임을 증명 한다.

 

실체와 위격에 대해서, 바실레오스는 “하나님은 실체에 적용되는 이름”이고 “위격은 실체의 개별 존재방식에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보았다. 성령은 바실레오스 신학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적용된 호모우시온을 성령에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삼위의 활동이 동일하므로 성령도 동일실체이며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며 하나님이심을 증명한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azianzus)는 친구인 바실레오스의 작업을 이어서 성령의 신성을 강조하여 동일 실체임을 강조한다.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이심은 한 실체, 동일본성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는 삼위일체와 세 위격들이 한 하나님이심은 동일실체, 동일본성이라는 데 두었다. 그레고리오스가 하나님의 본성의 특성을 강조한 이유는 아레안파가 성령을 피조물로 보는 것에 대항하여 성령이 하나님이고 피조물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삼위일체는 “실체는 하나”이고 동일하기 때문에 본성에 의해 위격들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특성에 의해서 구분된다고 보았다. 그는 380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신학적 연설을 하여 381 콘스탄티노플 공회의를 준비하였다.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이 다른 위격들과 동등하고 동일실체이며 한 실체가 세 위격에 공동이고 동등이라고 확정하였다. 바실레오스도 성령을 하나님으로 표기하는 일에 그렇게 정열적이지 못하였지만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을 당당하게 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yssa)는 바실레오스의 동생이었다. 그는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인 것은 본질이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기본 신학이었다. 그는 삼위가 서로 상호 침투한다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를 공식화하여 창조 전 만세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서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로 계신다고 보았다.4)

4) 서철원, 「하나님론」, 서철원박사교의신학 II (서울: 쿰란출판사, 2018), 135.

 

세 위격들이 삼위일체인 것은 각각 개별 존재이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신학자라고 불린다. 그는 성령이 피조물이 아니라 동일한 신적 본성을 가져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였다.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성령조의 공식화에 직접 참여하였다.5)

5)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악의 기원’을 설명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서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자기에게 좋게 여겨진 악을 선택하므로 악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악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아들을 통하여’(per Filium)이라고 정리하여 ‘아들로부터도’(filioque) 문제에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조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6)

6) 김석환, “캅바도기아 교부들과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논단」 2000 (2000), 289

 

이상의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들의 수고의 결과로 나타난 콘스탄티노플 신경(Symbolum Constantinopolitanum)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만드신 이를 믿사오며, 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한 아들을 믿는데,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요, 빛에서 나온 빛이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요, 출생하셨고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동일실체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오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수난 받으시고 장사되셨다. 성경대로 부활하사 하늘들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으니, 영광으로 다시 오사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 그의 나라는 끝이 없느니라. 그리고 성령을 믿사오니, 주시요 살리는 자시요 아버지에게서 나오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 받으시고 함께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느니라. 그리고 한 거룩한 보편적이며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 죄들의 용서에 이르는 한 세례를 믿사오며,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오는 세대의 생을 믿사옵니다. 아멘.”7)

7) 서철원, 「교리사」, 376-77.

  

서방교회는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 공식화 작업에 독창적인 사고로 적극적인 기여는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큰 저작을 통하여 성령의 나오심을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ex Patre Filioque)로 확정하여 삼위일체를 교회의 근본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이 작업에 있어서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의 결정을 승인하고 수납한 것이다. 

 

로마공회의(concilium Romanum, 382)의 결정: 서방교회는 381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 공식 대표가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성령의 출래를 바로 교정하기 위하여 보편 공회의를 소집해 줄 것을 로마 황제 떼오도시오스에게 청원하였지만 다시 동방교회들만을 소집하여 381 공회의의 결정을 재확인 하는데 그쳤다. 그래서 서방교회는 382 로마 교황 다마수스의 주재 아래 로마에서 공회의를 소집하여 성령이 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자는 신성모독이라고 정죄하였고 다른 이단들을 정죄하고서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의 교리 결정을 수납하였다.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397)는 삼위일체론을 세움에 있어서 콘스탄티노플 신경과 같은 신학적 견지에서 전개한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갑바도기아 교부들과는 달리 영이 아버지에게서만 아니라 아들에게서 나오심을 강조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어거스틴은 성령의 나오심을 아버지와 아들에게로 확정하였다.8)

8)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김종흡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7), 제5권 14장.

 

이것이 아다나시우스 신경(450년경)에 표현되었고, 톨레도 3차 공회의에서 채택되었다(589년). 삼위일체의 성경적 근거는 요한복음 1:1, 1:13; 3:5; 10:30; 15:26 등이다.

 

(3) 칼케돈 신경 (Chalcedonense 451)

 

431년 에베소 공회의에서 한 인격 두 본성을 결정했다. 그런데 로마의 황제 떼오도시오스 2세(Theodosius Ⅱ)의 승인 아래 449년 에베소 총회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유티케스의 정통성을 선언하고 애굽의 수도승들이 레오(로마의 감독)의 교리 서신을 받은 플라비아노스(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446-449)를 폭행하여 죽게 했다. 그래서 레오는 이 총회를 강도들의 총회라고 정죄하였다.

 

그러나 떼오도시오스 2세가 죽자 그의 누이 풀케리아(Aelia Pulcheria, 399-453)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공회의의 소집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로마의 감독 레오가 원하는 대로 이탈리아가 아니고 칼케돈을 공회의의 소집지로 정하고 451년 공회의를 소집하였다. 6백 명의 주교들이 참석하였고 공회의의 전체적인 목표는 제국의 안목에서는 전제국 내에 단일 신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니케야 신경을 정통신앙의 표준으로 재확인하고 또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이단 반박용으로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감독 퀴릴로스(Cyrilos, 412-444)의 교리 서신들을 인정하고 또 레오의 교리 서신을 유티케스 주의의 반박과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 428)의 그리스도 본성의 두 인격 주장에 대한 배척에 합당한 것으로 수납하였다.

 

유티케스(Eutyches)의 근본주장은 그리스도의 몸은 성육신 후에 우리와 동일실체가 아니고 오히려 성육신 후에는 그의 본성은 신적인 한 본성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스(Apollinarios)에게서 처음으로 나타났던 이단이었다.9)

9)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유티케스의 단성론,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의 그리스도의 두 인격 같은 이단적 주장은 결과적으로 터키와 이집트가 그리스도교의 융성 시대에 선진국을 유지하다가 현대에는 도리어 후진국으로 퇴보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감독 레오 1세(Leo I, 440-461)는 탁월한 정치적인 능력으로 칼케돈 신경의 공식화를 이루도록 도왔고 칼케돈 공회의를 주도하였다. 레오는 그리스도의 한 인격과 두 본성이 한 인격에 결합하였음을 강조하여 칼케돈의 공식화가 바로 이루어지게 일하였다. 칼케돈신경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우리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한 동일한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할 것으로 가르친다. 신성에 있어서 동일한 완전한 자이시며 인성에 있어서 동일한 완전한 자이시며,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시며, 합리적인 영혼과 육체로 된 동일자이시며,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실체이시며, 인성을 따라서 우리와 동일실체이시고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시다. 신성을 따라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해서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인성을 따라서는 그 동일자가 동정녀 마리아, 하나님의 출생자로부터 나셨다. 하나의 동일한 그리스도, 아들, 주님, 독생하신 자이시다. 두 본성에 있어서 혼합 없이 변화 없이 분열 없이 분리 없이 인식되어야 하며, 결코 연합 때문에 본성들의 차이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양 본성들의 특성들이 손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인격에로 또 한 존재 방식에로 함께 들어갔고 두 인격에로 나뉘거나 분열되지 않으며 한 동일한 아들, 독생하신 하나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선지자들 이전에 그에 대해 또 그 자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가르치신 것처럼 교부들의 신경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셨다.”10)

10) 서철원, 「교리사」, 486-87.

  

2. 어거스틴과 아다나시우스 신경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354년 오늘날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 북아프리카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였으나, 어머니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어머니 모니카가 어거스틴을 교육했으나 어렸을 때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그는 고향과 인근 도시 마다우로스 혹은 마다우라(Madaura)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카르타고에서 공부하려 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잠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370년 집안의 사정이 나아지자 아버지는 16살의 어거스틴에게 수사학을 배우도록 카르타고로 유학 보냈다. 카르타고에서 그는 키케로의 글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철학에 심취하게 된다. 어머니 모니카는 그가 자기와 같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당시 철학에 심취해 있던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교리에 매력을 느껴 마니교도로서 10여 년을 머무르기도 했다.

 

또 이 시기의 371년 열일곱 살에 그는 한 젊은 여성과 동거생활을 시작하여 14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낳기도 했으나 어린 나이에 죽었다. 이러한 아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과 절교를 선언한다. 그 당시 어거스틴은 마니교 지도자들의 지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회의를 느껴 잠시 신플라톤주의자가 되었다가, 마니교도 동료의 추천으로 타가스테, 카르타고, 로마, 밀라노 등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384년 밀라노로 건너가게 되면서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우스를 만나고 그의 설교를 통해 감동을 받는다. 그 일은 그가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2년 뒤 어거스틴은 회심하게 된다. 397년 히포의 주교가 된 어거스틴은 3년간 「참회록」을 집필했다.

 

어거스틴 성경해석자라기보다는 신학자와 변증가였다. 그는 다양한 지식과 자신의 변증법적 재질과 사변적 호기심으로 중세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열정으로 중세 신비주의자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교회제도에 대한 관심으로 중세 카톨릭 교회의 계급제도를 강화하였고, 성경의 충족성과 명료성을 강조하여 종교개혁의 원동력을 제공한 신학자였다.

 

성경 해석 면에서 어거스틴은 계시의 점진성을 인정하였고, 구약 전체에서 복음을 발견하려고 시도하였으며, 풍유적 해석이 역사적 의미에 근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히브리어는 모르고 헬라어도 약간 아는 정도에서 70인경과 라틴 역본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성경의 역사적 의미에 약했으며, 티코니우스의 해석법칙들을 수용하여 성경에 풍유적 해석을 가하였다.11)

11) 권성수, 「성경해석학1」, 133-34.

 

그러나 어거스틴은 성경원어 지식이 불완전했어도 「삼위일체론」을 저술하여 신학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의 풍유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의 위대성은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심”을 명시한 신학적 교리적 공헌에 있다.12)

12)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185-86.

 

 이것은 그의 스승 암브로시우스에게 받은 영향이다. 이것은 450년경 아다니시우스 신경 23조에 적시되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고 만들어지지 않으시고 창조되지 않으시고 출생되신 것이 아니고 나오신다” (Spiritus Sanctus a Patre et Filio, non factus nec creatus nec genitus, sed procedens). 이러한 진술로 삼위일체 교리가 결말 되었다.13)

13) 서철원, 「교리사」 (서울: 총신대출판부, 2003), 411-13.

 

이와 관련하여 동방교회는 성령이 아버지에게서만 나오신다는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고집하고, 아다시우스 신경을 인정하지 아니하여 서방교회와 갈라지게 되었다. 서방교회는 지금까지 코스탄티노플 신조와 함께 아다나시우스 신경을 수용하고 있다. 암브로시우스와 어거스틴 그리고 아다나시우스 신경의 진술은 요한복음 1:1, 10:30, 15:26 등의 내용과 일치한다. 

 

이상과 같이 고대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공인한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는 우리 기독교의 두 뿌리이자 기독교의 근본 교리이다. 따라서 고대 교회가 풍유적 해석과 영해의 경향이 있었어도 성경의 정통교리를 확고히 수납하여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당대와 후대에 잘 전달하였음을 현대교회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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